북유럽 미니벨로 여행 1. 헬싱키

2018. 2. 12. 23:43여행기/북유럽 미니벨로 여행기

2012년 여름에 『베어울프』라는 서사시를 읽게 되었다. 이 서사시가 하도 유명해서 무엇 때문에 그런 명성을 얻게 되었는지 알아보기 위해 집어들은 『베어울프 』는 고대영문학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작품이다. 대략 서기 700년쯤에 쓰여졌다고 보는데, 독자는 북유럽을 배경으로 영웅 베어울프의 모험을 따라간다. 고대서사시는 하나 같이 먼저 신에게 영감을 구하면서 시작하는 것과 같이 『베어울프』에서도 어김없이 서두에서 신이 보내준 인물을 언급하면서 시작한다.  책의 서문에서 J.R.R.톨킨의 이름이 거론 되어서 한번 놀라고 고대에 쓰여진 시라 기독교와 전혀 관련이 없는 줄 알았던 책의 서두에서 작가가 크리스천 시인이라고 밝혀서 다시 한번 놀랐다. 『베어울프』를 접하면서 그가 살아 숨쉬었던 땅을 동경하게 되었고 고대의 검을 찾아 괴물을 무찌르고 용에 대항한 그 땅, 그리고 베어울프의 장례식이 거행된 바로 그곳에 대한 염원이 항상 마음속 한 켠에 자리 잡게 되었다. 『베어울프』를 접한 후로 고대영어와 관련된 전반적인 주제에 흥미를 가지고 고대영어로 쓰여진 시와 책들을 찾아서 꾸준히 읽었다. J.R.R.톨킨의 호비트와 반지의 제왕의 모티브가 이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나왔는데, 스스로 톨키니스트라고 자부하는 나로서는 이러한 관심이 2017년 여름에 북유럽을 자전거로 여행을 하도록 더욱 부추겼다.



북유럽을 자전거로 여행하게 된 경위

앞에서 거론한 동기와 또 다른 하나는 자연이다. 북유럽, 특히 거대한 산과 그 사이에 있는 물인 피오르로 유명한 노르웨이에 가서 그 경이로운 피오르와 산 안에 들어가고 싶었다. 여기에 더불어 북유럽 국가들은 어디에서나 캠핑이 가능한 ‘The Right to Roam 배회할 권리’, 또는 ‘Everyman’s Right 모든사람의 권리라고 해서 자연 어디든 상관없이 야영을 할 수 있게 법으로 제정이 되어있다는 사실이 경비를 최소화하려는 나의 결정에 힘을 더욱 실어주었다. 사유지라면 먼저 주인에게 물어보는 것이 타당하지만, 노르웨이에서는 사유지라도 반경 150m에 주거하는 집이 없으면 두밤을 지낼 수 있도록 보장을 한다.

여행 계획의 초기에는 군대에 있을 때 여행책자를 하나 구매해서 여가시간에 그 책과 지도를 보면서 여행 계획을 세우곤 하면서,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독일까지 갈까도 생각을 해보았는데 시간의 제약으로 인해 이번 여행은 북유럽만 돌아보기로 하였다. 어렸을 때 읽었던 여행기의 대부분의 작가들이 자전거로 유럽일주와 일본일주, 미국횡단 그리고 세계일주를 하는 사람들이 다 자전거로 여행하는 것을 봐오면서 나도 그렇게 해야겠다는 마음을 자연스럽게 가지게 되었는데, 특히 미국을 횡단한 작가처럼 20인치 바퀴를 가진 미니벨로로 여행을 하고 싶었다. 그 중에서도 바이크프라이데이사의 뉴월드투어리스트라는, 세계여행을 할 만한 포스가 나는 이름을 가진 자전거가 나의 선망의 대상이었지만 가격이 가격인지라 미니벨로 중에 앞바퀴와 뒷바퀴 사이가 넓어서 짐을 분배하여 싣기가 좋아 여행용으로 알맞다는 티티카카의 D24을 선택하게 되었다.


첫째날: 여행의 시작

새벽에 집을 떠나 리무진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갔다. 항공사마다 자전거에 붙는 비용 유무가 다 다른데 다행히 이번에 타고가는 핀에어에서는 별도의 추가운임료 없이 자전거를 붙일 수 있었다. 20인치 바퀴를 가진 미니벨로를 선택한 이유 중 하나는 폴딩이 가능하여 여차하면 노르웨이의 협곡에서 자전거를 접고 무리없이 자연스럽게 차를 얻어 탈 수 있기에 최적이다. 자전거로 여행중이더라도 차량에 싣고 타는 것이 용이하기 때문에 신속히 타고 내리기가 가능하다.

인천에서 오전 1020분에 출발하였다. 헬싱키에 오는 내내 창문 밖은 계속 밝았다. 옆에 아이가 앉았지만 저번에 탄 비행기에서의 경험과 다르게 별다른 일을 벌이지않고 조용하게 있어 더 귀여워 보인 아이 옆에 타서 별일없이 편하게 오후 2시에 헬싱키에 도착하였다. 자전거를 비행기에 싣거나 차에 싣기 쉽게 하기 위해 산 큰 가방에서 자전거와 그 밖에 같이 넣어 논 침낭과 텐트 등을 꺼낸 후 자전거 위에 짐을 실었다. 이번 여행에서는 자전거만 타지 않고 노르웨이에서 트레킹도 할 계획이라 자전거 전용 페니어를 따로 사지않고 등산용 가방에 자전거용 끈만 챙겨와서 자전거에 묶기로 하였다. 짐을 쌓고 있는데 옆으로 와서 자전거에 대해서 물어보고 사진도 찍는 것을 보니 외국에서 미니벨로는 역시 드문 것 같다. 짐을 다 찾은 후에 자전거로 시내 진입이 어려울까 하여 헬싱키 시내까지 버스를 타고 이동을 할까 잠깐 고민하다가 자전거를 타고 가기로 하였다. 헬싱키에서 스웨덴으로 이동할 페리를 알아보는데와 자전거를 준비하는데 시간을 많이 써서 오후 330분에야 공항에서 드디어 출발하게 되었다.

다행히도 우려와는 달리 헬싱키 공항에서부터 자전거길이 잘 나 있어 위험하지 않게 출발할 수 있었다구름이 껴 있었지만 날은 밝아서 문제 없었다헬싱키의 공기는 서늘하고 시원하고 전혀 습하지 않아서 자전거 타기에 쾌적하였다자전거 길도 매우 잘되어 있어서 다음에는 핀란드에서만 달려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공항에서 숙소까지 대략 20km로 그리 멀지 않았다.  구글맵에 목적지를 찍고 가는데 웬걸최소 단거리 길을 찾는다고 지그재그로 찾아 놓았다한 길을 계속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이길 저 길로 인도하여 계속 길을 바꿔 타며 따라가야 했다.

공항부터 이어져있는 자전거 도로

차도 옆에 자전거 전용 도로가 있다.

구글맵을 따라서 들어가게 된 한 공원


아직 헬싱키 외각이긴 하지만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매우 많았다. 자전거 타는 사람들을 보니 한국에서처럼 주행 전용 바지와 전용 저지, 그리고 좋은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많았다. 한국에서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선수도 아니면서 좋은 자전거에 쫄쫄이 바지를 타고 다니냐고 비난을 많이 하는데 한국에서는 그냥 일반인들이 자전거를 안타는 것뿐이지 핀란드에서 자전거에 많이 투자하는 사람들은 한국보다 더 하면 했지 덜하지는 않아 보였다. 다른 점은 단지 평범한 자전거를 타는 일반인들이 더 많은 것뿐이었다. 계속 달리다 보니 숲과 공원만 나오는 길에서 시가지로 진입을 하게 되었다. 반듯하게 정돈이 되어있다는 느낌의 시가지를 지나 어느정도 달린 후 숙소가 나왔다. 근처 환경은 전반적으로 쾌적했는데 물건을 만드는 소기업들이 드문드문 있었다. 숙소 이름은 CheapSleep Hostel Helsinki인데 이름 그대로 저렴한 가격에 잠을 잘 수 있는 호스텔이다. 헬싱키에서 찾을 수 있는 가장 저렴한 숙소 중 하나였다. 하룻밤에 26000원을 지불했다. 방은 다른 8명과 쓸 수 있도록 되어있지만 방 구조 자체가 디귿자로 되어 있어 불편하진 않았다개인 라커도 따로 있다문제는 방이 2층에 위치해 있고 하나있는 엘리베이터가 3~4명이 간신히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매우 좁아서 자전거를 그대로 들고 갈 수 가 없었다. 짐이 없었다면 그냥 계단으로 들고 갔겠지만 짐만 놓고 옮길 수는 없어서 자전거를 접으니 엘리베이터에 간신히 들어갔다. 미니벨로의 환경에 대한 순응성이 빛이 발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간신히 프론트데스크에가서 체크인을 한 후 자전거를 접어서 방으로 들어갔다. 미니벨로가 아니였으면 자전거를 밖에다가 두고 와야 했을 텐데, 그럼 자전거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매우 염려 되었을 것이다. 잠자리는 2층 침대의 1층이었지만 나쁘지 않았다.  

545분쯤 도착하여 짐을 정리하고 나니 7시가 되었다. 건물의 1층에 있는 슈퍼마켓의 상품들을 봤을 때 물가가 딱히 비싼 것 같지는 않았다. 따듯한 음식을 먹고 싶어 닭고기 맛 인스턴트 라면과 인스턴트 파스타, 큰 요거트 하나를 골랐다. 가게 뒤쪽에 빵을 파는 곳이 있어서 보니 이름을 알 수 없는 가성비가 좋은 빵이 있어서 두어 개 집어와 호스텔에 돌아와보니, 배고픈 탓이었는지 너무 많이 사왔다. 인스턴트 면들은 컵도 크고 양이 매우 많았는데, 파스타는 향이 너무 강해서 맛이 별로 없었고 빵은 먹을 때 개사료 냄새가 났지만 딱히 나쁘진 않았다. 먹으면서 호스텔을 좀 둘러보았다. 러시아인들이 많이 있었다.


역시 북유럽의 여름이라 그런지 밖은 여전히 환했다. 7월의 오후 8시의 해는 전혀 내려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유럽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북유럽에서도 다른 수도들보다 북쪽에 위치한 헬싱키는 더 그러했다. 구름은 꼈지만 한낮처럼 밝았고, 기온도 10~20도 사이라 매우 쾌적하였다. 시내를 둘러보기로 하여 자전거를 가지고 밖으로 나갔다. 묶고 있는 호스텔은 시내 중심에서 3~4km정도 떨어져 있어 도보로는 오래 걸리겠지만 자전거로는 대부분의 경우 10분 안팎으로 걸리는 거리라 나쁘지 않았다. 먼저 헬싱키에서 유명한 암벽교회를 가보기로 하였다. 도시 자체가 그리 크지 않아서 자전거로 웬만하면 다 다닐 수가 있어서 대중교통은 쓸 필요가 없었다. 헬싱키의 거리를 달렸다. 자전거 도로가 매우 잘되어 있는 걸 보며 놀랐다. 사람들이 가장 행복하고 수준 높게 산다는 곳이 왜 그런지 알 수 있었다. 어디를 가든지 자동차 도로 옆에는 자전거를 위한 길이 따로 있고 인도 옆에도 자전거 도로가 어김없이 있었으며, 때에 따라서는 인도보다 자전거도로의 폭이 훨씬 넓은 경우도 종종 있다.

핀란드의 표지판에는 흥미롭게도 미국이나 한국과는 달리 항상 아이의 손을 잡고 가는 사람이 새겨져 있고 자전거가 다닐 수 있는 길에는 그 밑에 자전거가 같이 그려져 있어 새로웠다. 헬싱키는 자전거 천국이라 불릴 만 하다. 자전거 도로가 없는 데가 없으며 자전거 도로에서는 자전거가 우선이고 사람들이 다니는 길은 따로 있다. 대신 사람이 다니는 길에 자전거 표시가 없으면 들어가면 안되는 것 같다. 자전거 고속도로라고 불리는 길이 있다는 데 그곳은 가보지 못했다. 여행중에 스톡홀름이나 오슬로 같은 다른 북유럽의 수도들을 들렸는데 이 도시들은 자전거를 위한 도로들이 헬싱키보다 발전하지 못하였다. 오슬로가 가장 덜 발달되어 있다. 스톡홀름은 자전거 길이 자동차 도로 한가운데 있어서 좀 아찔하다.

 구름이 드리워져 있었지만 한낮처럼 밝았다. 돌아다니는 사람이 적은 것을 깨닫고서야 저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암벽교회를 찾아 골목 골목을 돌아다녔는데, 여기 도시의 건물들의 특징은 과한 치장없이 다 조용조용하게 생기고 창문이 매우 많다는 것이다. 건물 곳곳에 매우 큰 깃대가 달려있었지만 깃발은 달려있지 않았다길도 깨끗하고 조용했다. 여태껏 다녀본 나라들과 달리 가로등이 없는 대신에 건물 사이에 줄이 연결되어 있고 가운데에 등이 달려있었다. 다른 북유럽 도시들도 그렇게 되어있어서 북유럽만 그런 줄 알았는데 스톡홀름에서 만난 독일인 마틴에게 물어보니 상대적으로 남쪽에 있는 독일에서도 그렇다고 했다. 깃대에는 상점을 나타내는 등의 깃발을 단다고 한다.

암벽교회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5시가 지나있을 때라 이미 시간이 늦어서 닫혀 있었다. 암벽교회에서 발을 돌려 시벨리우스 공원으로 향했다. 클래식음악을 매우 좋아해 헬싱키에 오면 들리고 싶었던 곳이라 힘차게 페달을 밟았다. 사전에 알아본 바로는 시벨리우스 공원에 파이프 조각물이 있다고 해서 봤는데 도착해서 보니 생각한 것 보다 작고 아담했다. 20세기를 풍미했던 시벨리우스의 얼굴 조각 옆에서 사진을 찍고 감상하는 동안 몇몇의 핀란드인들도 지나치고. 중국 관광객을 태운 버스도 두번이나 왔다 갔다. 핀란드는 아직 단체 중국관광객보다는 일본 관광객이 더 많다고 들었는데 이제는 중국인들도 많이 오는가 보다. 예전 학교를 다닐 때 음악 교수님이 소개해준 시벨리우스의 찬가와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도 생각이 났지만 그 장소에서 음악을 듣기에는 너무 감상적일 것 같아 그곳에서 어느정도 시간을 보낸 뒤에 이동하였다.

시의회로 이동하는 중에 한 무리의 거위를 지나쳤는데 거위들이 차가 다니는 도로에서 차를 전혀 무서워하지도 않고 거리낌없이 느리게 다녔다. 거위 한마리 때문에 세네대가 줄지어 있어도 클랙션을 울리지도 않고 기다리다가 가는 것을 보면서 핀란드만의 여유를 느낄 수 있었다

헬싱키에 여행책자를 보면 항상 추천하는 장소인 시의회 건물에 도착하였는데 가서 보니 헬싱키에서 가 볼만한 건물들이 광장 주위에 다 모여 있었다. 루터파교회인 대성당이 높은 언덕에 자리를 잡고 있었고 시의회 건물과 국립도서관등이 다 그곳에 운집되어 있다. 10시가 넘었는데도 밝아서 광장 주위를 구경하면서 쉬다가 보니 시간이 오래되어 늦은 감이 있어 다시 열심히 밟아서 11시쯤에 호스텔로 돌아왔다

오후 10시에도 환한 헬싱키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