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미니벨로 여행 2. 헬싱키 시내와 투르쿠, 그리고 첫 캠핑

2018. 2. 13. 16:02여행기/북유럽 미니벨로 여행기

           7월 말.  새벽 한시. 헬싱키는 그리 어두워지지 않는다. 시기는 좀 늦었지만 아직 남아있는 백야의 끝자락을 볼 수 있었다. 아침에 슈퍼마켓에서, 유럽에 오면 다들 좋아하는 납작한 복숭아가 있어 한 상자를 샀다. 알이 사과 반쪽 정도로 크지는 않았지만 일곱개에 2유로, 환산하면 2,600원 정도로 한알 당 370원이라 나쁘지 않은 가격에 새콤하진 않지만 매우 달아서 먹을만 했다. 핀란드는 북유럽이라도 물가가 저렴해서 비교적 적은 돈으로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 구운 빵 몇 개와 망고, 그리고 사과 맛 요거트를 추가로 사서 듬직하게 먹었다.

원래의 계획은 저녁에 헬싱키에서 스톡홀름으로 출발하는 페리를 타는 것이었다한국 여행객은 한국 여행사에서 특별히 저렴하게 살 수 있어 문의를 해보니 탑승 며칠 전에 예매해야한다고 하는 것이다. 차선책으로 찾은 티켓은 20만원으로 너무 비싸서 대안을 알아보아야했다. 다행히 9유로에 핀란드의 서쪽으로 170km 떨어져 있는 도시인 투르쿠Turku로 가는 버스를 탄 후 하룻밤을 지낸 뒤 그곳에서 자전거까지 합해서 36달러인 페리를 찾아내어 투르쿠로 가기로 계획을 조정하면서 핀란드에 있는 일정이 하루 더 늘게 되었다.

혹시 오프라인으로 버스티켓을 사면 더 저렴할까 하여 버스터미널로 자전거를 타고 갔다. 헬싱키는 도시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아 자전거로 멀어도 30분이내면 다 다닐 수 있다. 어느 정도 달려 도착한 헬싱키 버스 터미널은 규모가 꽤 컸고, 앞에는 자전거들이 빼곡하게 주차 되어 있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서 어느 한 부스 안에 있는 사람에게 표를 어디가면 살 수 있는지 물어보니 유창한 영어로 어디로 가면 되는지 알려주는데 거의 원어민과 필적하는 실력 때문에 놀랐다. 매우 친절해서 핀란드인 호감도 상승. 말한데로 찾아가서 물어보니 26유로라고 한다. 그냥 온라인으로 예약을 했다. 오늘 저녁에 투르쿠로 떠나기 때문에 호스텔로 돌아와서 짐을 다시 다 싼 후에 짐을 맡겨 놓아도 되냐고 물어보니 흔쾌히 수락해서 짐을 놓고 자전거를 가지고 어제 갔던 시의회 광장으로 다시 출발하였다. 보통 호스텔이나 게스트하우스는 짐을 맡겨 놓을 수 있는데, 대부분은 무료이지만 규모가 큰 곳은 유료인 경우도 있다.

잘 놓여진 자전거 길에 다시 감탄을 하면서 거리를 구경하였는데, 북유럽이라 해가 떠있는 기간이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어제 본대로 건물에 창문이 많이 나 있어 자연광이 집안을 가득 채울 것 같았다. 물가 옆에 있는 공원에 잠시 들려 구경하기도 하다가 어제는 그냥 지나쳤던 헬싱키 국립 도서관에 도착하였다. 문이 생각보다 작고 소박해서 도서관인 줄 몰랐는데 안으로 들어가보니 매우 많은 양의 책이 벽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천장 중간에 돔으로 있는데 기하무늬로 꾸며져 있어 탄성을 자아냈다. 오래된 것과 다르게 도서관 안쪽은 현대화되어 컴퓨터와 엘리베이터도 있다

책한권을 꺼내보니 1800년대 초반에 출반된 가우스의 저서다거의 200년이나 된 책이 평범한 다른 책과 같이 꽂혀 있는 것이 신기했다

중앙의 메인홀 옆에도 다른 공간이 있는데 꼭 미녀와 야수에서 나오는 서재처럼 벽이 책으로 뒤덮여 있었고 기다랗게 나 있는 창문이 곳곳에 있어 도서관 안을 밝게 비추고 있었다창가에는 책상과 의자가 놓여져 한두명이 앉아서 읽을 수 있을 있도록 되어있어 사람들이 앉아 책을 읽고 있었는데 그렇게 멋진 책속에 둘러싸여 자연광을 받으며 읽을 수 있는 것이 부러웠다도서관에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있을 수 있을 것 같았다도서관에서 나왔을 때는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졌지만 그것 뿐이었다도서관에 들어갈 때 자전거를 밖에 묶어두고 가는 것 때문에 마음에 좀 걸렸었는데 헬싱키가 워낙에 깨끗해 공연한 염려였다

맞은 편에는 광장을 내려다보고 있는 헬싱키 대성당이 있다루터파 교회인데 규모가 상당하다

헬싱키 대성당의 내부 장식이다. 헬싱키 대성당은 인구의 85%가 루터파인 핀란드의 본산이라고 한다.

어제와 다르게 광장은 관광버스로 둘러싸여 있었다어제 밤에 차 없이 전철만 가끔씩 지나가던 조용하고 낭만적인 장면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우측으로 보이는 쌓인 돌들이 교회의 지붕이다.


돌교회로 다시 이동하였다. 암석교회라고도 하는 이 교회의 정식 명칭은 템펠리아우키오 교회 Temppeliaukio Church이다. 1960년대에 한 건축가 형제가 낸 제안서가 공모전에서 채택되면서 지어졌다고 한다. 어제는 길 끝 밑에서 올라가는 계단만 보았는데 올라가서 보니 매우 다른 광경이 펼쳐졌다. 큰 자연석인 암석이 가운데 있고 그 주위에는 그냥 사람들이 사는 일반 건물들이 감싸고 있다. 주위 환경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조용했다. 암석 위에 올라갔는데 문이 없어서 입구를 찾아서 한참 돌아가니 반대쪽 밑에 문이 있었다. 입장료는 3유로.

실내에는 자연광이 천장에 나있는 창을 통하여 들어왔다. 공간이 그리 크진 않았지만 자연과 조화로움이 보기 좋았다. 교회내부는 거대한 암석을 통째로 깍아서 만든 공간이었다. 꼭 나이테가 보이게 자른 나무처럼 생긴 천장을 창문살이 떠받이고 있는데 22km 길이의 구리로 덮혀있다고 한다. 한참 구경하다 보니 오후 3시 반이 넘어갔다. 5시 즈음에 버스를 타기로 했기 때문에 숙소로 빨리 돌아가 맡겨놓은 짐을 가지고 버스 터미널로 갔다.

헬싱키에서 가장 저렴한 호스텔 Cheapsleep 호스텔의 로비이다.

여행 중에 짐은 상당히 부담이 된다. 특히 자전거 여행자들은 짐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 자전거 넣는 가방을 처음 살때는 약간 큰 감이 있었는데 침낭 등의 부가 짐을 넣어도 문제가 없어서 오히려 탁월한 선택이었다. 이번 헬싱키에서 투르쿠까지 가는데 이용하는 버스는 오니버스Onnibus이다. 웹사이트에서 영어를 지원해 무리없이 표를 살 수 있었다. 각 승객당 20kg의 수화물 하나와 의자 밑이나 선반 위에 올려 놓을 수 있는 짐을 가져갈 수 있게 되어있다. 버스회사마다 자전거에 대한 방침이 다른데 이 회사는 보통 자전거는 실을 수 없다고 하지만 다행히도 미니벨로 같은 폴딩 자전거는 가방에 넣는 한 괜찮다고 했다. 자전거를 화물담당에게 주고 배낭을 가지고 자리에 올라갔는데 등산 가방을 넣기에는 너무 좁아 배낭도 짐칸에 실어도 되냐고 물으니 짐을 실어주는 사람은 흔쾌히 자전거와 배낭을 둘다 뒷공간에 실어줬다.

여행하기 전에 외국에서 ISIC 학생증 겸 쓸 수 있는 해외 체크카드를 가지고 갔는데 온라인 결제가 잘 안되서 국내에 있는 동생의 도움으로 버스 2층 창가의 자리를 예매를 했다. 생각보다 그리 넓진 않았다. 옆자리에 핀란드인이 앉아서 대화하면서 가기를 기대했는데 아무도 안지 않았다. 그래서 편하게 가기는 하였다. 헬싱키에서 멀어진 길가의 풍경에는 얇고 긴 나무들이 많았다.


           투르쿠를 처음 본 인상은 헬싱키처럼 오래되고 정갈한 건물보다는 현대적이고 특색 없는 박스 형식의 건물이 많고 무채색이라 여기가 러시아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거기다가 구름까지 끼어서 도시가 더 음침하게 느껴졌다. 투르쿠는 1800년대 초까지 수도였기도 한, 핀란드에서 가장 오래 된 도시라 고색창연할 줄 알아 의외라고 생각했다. 외각에서 시내로 들어가보니 콘크리트 건물들만 있는 것은 또 아니었다. 도착하였을 때는 구름이 드리워져 있긴 하였지만 시간이 740분 정도라 아직 밝았다. 원래는 버스터미널에서 내렸어야 하는데 핀란드어의 익숙하지 않은 철자와 읽히는 발음도 달라서 한 정거장을 더 지나쳐서 내리게 되었다. 운전사 아저씨는 자전거가 있으니 다시 돌아 갈 수 있을 거란다. 딱히 멀지는 않아 그냥 자전거를 타고 갔다.

   학교 캠퍼스를 하나 지나 자전거를 타고 계속 가다보니 매우 큰 교회가 나왔는데 지도에 보니까 복음교회라고 적혀 있었다. 루터파 교회인 투르쿠 대성당은 그 규모가 헬싱키의 루터파성당보다 더 커 보였다. 종탑에는 시계가 달려있고 위쪽은 검정색으로 되어있어 특이했다. 교회 앞에 서있는 사람과 비교하면 교회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그곳에 있는 공원에 앉아서 쉬고 있는데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학생 하나가 길을 가다가 일상인 것처럼 벤치에 앉아서 책을 읽다가 갔는데 책을 그렇게 캐주얼하게 읽은 모습이 멋져 보였다. 조그만 공원에서 구경을 좀 하다가 시간도 좀 있고 해서 내일 배를 탈 항구에 가면서 주변 구경을 하려고 강이나 운하로 보이는 물을 따라 내려갔다. 강에는 배들이 여럿 떠있었고 그 위에서 사람들이 저녁을 즐기고 있었다. 운하 옆 길은 사람들도 꽤 많이 다니고 자전거도 많이 보였다.

  항구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저녁 9시가 넘어서인지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근처에는 투르쿠에서 유명한 성이 하나 있었는데 중세의 성보다는 큰 벽돌집 같았다. 13세기부터 지어지기 시작해서 핀란드 역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밤이 너무 깊어지기 전에 캠핑할 장소를 찾아야 했다. 성 주위는 다른 집들과 가까워 적합하지가 않아 캠핑을 할 자리를 찾으려 지도를 보니 강을 다시 거슬러 올라가면 녹지가 있었다. 캠핑 할 장소를 찾는 것에는 몇가지 기준이 있다. 먼저 공간이 충분한 녹지로 표시된 곳. 사람들의 주거지와는 어느 정도 떨어져 있어 잘 보이지 않는 곳. 하지만 원래 다니던 도로와는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곳. 그리고 먹을 것을 살 수 있는 식료품점과 가까운 곳. 나는 구글맵을 보면서 캠핑할 장소를 찾을 때는 비교적 규모가 큰 녹색 구역을 보고 가늠을 한다. 그 녹지가 공원일수도 있고 비어있는 땅일 수도 있는데 막상 가보면 산이거나 풀이 매우 무성해서 들어 갈 수 없는데도 있어 당혹스러울 때도 있다. 일단 운하를 따라 사람 인기척이 없는데 까지 계속 올라갔다. 다른 유럽 국가에서 공원에서의 캠핑이 금지가 되어있는 것과는 달리 북유럽은 관대하다. 그러나 핀란드는 어떨지 확실히 몰라서 사람이 드문 곳까지 계속 올라갔다. 계속 길을 따라가니 도심지역을 지나 밀 같은 초록색 풀이 펼쳐진 곳이 나왔고, 간간히 공장 굴뚝이 보였는데 보통 그림책에서 보던 것처럼 굴뚝이 위로 솟아 있었다. 구글맵에서 본 녹지는 아무래도 키가 큰 풀밭이 대부분이라서 텐트를 치기에는 무리였다. 풀밭을 지나 인적이 드문 장소를 계속 찾으려고 했지만 조깅하는 사람들이 꾸준히 지나갔다. 헬싱키에서도 그랬지만 핀란드 사람의 거의 대부분은 금발인데, 그냥 일반적인 금발, 더티 블런드 같은 색이 아니라 매우 밝은 색의 금발이 다수를 차지했다. 외딴 길이라도 벤치가 군데군데 놓여져 있어서 잠시 해질녘 풍경을 구경하며 쉬어갔다. 저녁을 먹지않아 허기가 져 찾아보니 S마켓이라는 핀란드의 대형마켓이 700~800미터 정도의 거리에 있었다. 현재 시각 10. 보통 빨리 닫는다고 하는 마트라도 꽤 늦은 밤까지 하는 곳도 많다고 들은 떠라 희망을 가지고 패달을 밟았다. 도착해서 보니 9시까지만 영업한다고 표시가 되어있었다. 바로 옆에 아직 불이 켜져 있는 핀란드의 유명한 햄버거 가게인 헤스버거Hesburger에 갔는데 안타깝게도 영업시간이 10시 까지 여서 겨우 10분 차이로 놓쳐 다시 공원으로 돌아왔다. 해가 밤늦도록 계속 떠있다 보니 시간 감각이 무뎌진 것과 더불어 이곳 가게들이 문을 빨리 닫아 결국 아무것도 먹을 것을 구하지 못했다.

  사실 공원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중간 중간에 벤치가 놓여있는 산책길이다. 길을 따라서 텐트를 쳐도 될 만한 공터가 몇몇 있었으나 늦은 밤이어도 해가 오후 5시처럼 계속 떠있어서 그런지 조깅하는 사람들이 꾸준히 지나가서 자리잡기 부담스러웠다. 마트에 가기전에 잠시 눈 여겨 둔 옆으로 빠지는 길을 따라 경사를 내려갔더니 위의 도로에서 잘 안보이는, 조그만 나루가 있는 공터가 보였다. 그 가까이로는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있는 데다가 수풀이 우거져서 밖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하룻밤을 지내기에 알맞아 그곳에 첫번째로 텐트를 쳤다. 여행 중 처음 치는 텐트. 별로 힘들지는 않았다. 팩은 자전거를 놓을 공간만 빼고는 따로 박지 않았다. 텐트를 치는 동안 몇몇 청년들이 음악을 틀고 공터로 내려와서 잠깐 긴장을 했었는데 텐트를 봤는지 다시 돌아갔다. 자전거를 이너텐트 밖과 겉 커버 안쪽에 배치시킨 뒤에 텐트에 들어갔다. 그때 어머니께서 챙겨주신 영양갱이 생각나서 꺼내서 먹었다. 두개가 있었는데 매우 감사해 하며 다 먹었는데 하루 종일 자전거를 타서 그런지 매우 맛있게 느껴졌다. 식량난에 더불어 업친데 덮친격으로 물도 한모금 정도 밖에 안남아서 조금만 마실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밤 11시가 지난 후 아직 하늘이 밝을 때 잠이 들었다


다음편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