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2. 14. 00:53ㆍ여행기/북유럽 미니벨로 여행기
자다가 너무 추워서 깼다. 잠든지 2시간 정도 후 였는데 침낭이 얇은 나머지 제구실을 못하였다. 예전에 이집트 여행 때 가져간 침낭이니 이제 14년 정도 된 침낭이다. 자전거 여행에는 짐을 최소한으로 해야 해 부피와 무게로 승부하는 초경량 침낭이라 가져왔는데, 한국에서 짐을 쌀 때 잠시 고민했던 오리털 침낭이 매우 그리워졌다. 전날 밤에 잠이 들 때는 춥지 않았는데 새벽 2시도 되기 전에 추위 때문에 눈이 혼자서 떠졌다. 밖은 아직도 밝았다. 계속 누워서 버티려고 했으나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옷을 있는데로 다 꺼내서 위아래에 다 껴입었다. 발도 얼어붙었다. 사전조사 할 때 기온이 영상 10도까지 내려가는 것을 보고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위아래 양말까지 겹으로 껴입어도 추위는 가시지 않았다. 텐트도 무게를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 2.6kg 정도 되는 2인용 텐트를 가지고 왔는데 이너텐트가 매쉬라 그런지 텐트 밖 공기와 온도가 별 차이가 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렇게 누워서 떨고 있다가 5시가 넘어갈 때 즈음에 일어나서 텐트를 정리하였다. 밖에 나와서 보니 텐트는 이슬에 젖어 있었다. 이슬이라도 막아줘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되나. 몸을 움직이니 한결 나았다.
정리를 다 하고 떠날 채비를 한 뒤 7시에 어제 갔던 마트가 열린다고 하여 맞춰서 갔다. 마트에서는 납작복숭아 한 상자와 자두 한 상자, 시나먼 롤 한 주머니과 요거트에 핀란드 탄산음료를 곁들어서 샀다. 그렇게 장을 본 뒤 어제 잠시 앉아 쉬었던 곳 근처의 벤치에 앉아서 아침 식사를 하면서 햇빛을 쬐었다. 아침 햇살은 강하지는 않았지만 밝게 비췄다. 그렇게 앉아서 지나가는 트랙터에게 손을 흔들면서 느긋하게 아침식사를 즐기다가 혹시나 해서 이메일을 다시 체크해보니 보행자는 출발 30분 전까지 도착하면 되지만 탈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60분전까지 가야한 것을 발견했다. 차가 아니니 보행자일 것으로 착각하고 45분까지만 가면 되는 것으로 시간을 잘못 계산한 것을 깨닫고 바로 식사를 중단하고 자전거를 타고 달렸다. 한가지 더 간과한 것은 구글 지도에서 자전거로 20분 걸린다고 나온 것이다. 구글맵은 자전거로 평지에서 빨리 나간 시간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처음 가는 길이면 그 시간의 두배로 계산을 해야 한다. 다행히도 어제 페리를 타야 할 장소까지 한번 가봐서 길을 헤매지는 않았다. 전날 지나갔던 운하를 따라 페달을 최대한으로 밟아 성을 지나 항구에 도착하였는데 7시 50분으로 이미 탑승 시간에서 5분이 지나 있었다. 북유럽 자전거 여행와 페리라..
헐레벌떡 건물안으로 뛰어가 인포메이션 부스에 갔더니 보행자들은 이미 줄지어서 탑승하고 있었다. 자전거는 어디로 가야 하냐고 물어보니 차들이 탑승하는 곳으로 가라고 한다. 다시 차들이 서있는 곳으로 전속력으로 가서 보니까 맨 뒤에 서있는 자전거 두대가 보여 그 뒤에 섰다. ‘바이킹 라인 타세요?’라고 물으니 그렇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8시 45분 스톡홀름행 페리를 타게 되었다. 티켓에는 한시간 전에 탑승이라고 나와 있지만 도착해보니까 나의 자전거 뒤로도 차들이 계속 와서 줄을 섰다. 페리를 처음 타봐서 경황이 없었지만 그래도 놓치지 않고 무사히 타게 되서 다행이다. 유쾌한 검표원을 지나서 페리에 들어갔다.
페리는 매우 컸다. 거의 크루즈선 만큼 컸다. 차를 싣는 공간도 위쪽에 있어 차들도 줄지어 램프를 따라 올라가야 했다. 맨 위층까지 합하여 10층은 되었는데 차들은 3,4,5층에 배치되고 나는 맨 밑층 2층에 방을 배정받았다.
방에는 접이식 침대가 총 4개 있었는데 나 혼자 있어 독실처럼 쓸 수 있었다. 수면보다 아래서 인지 방에는 창문대신에 창문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방에 들어가서 샤워를 하고 아침에 마트에서 사온 탄산음료와 자두로 못다한 아침식사를 마저 하였다. 자두는 속이 빨게서 달 줄 알았는데 눈이 감길만큼 시었다. 배를 잠깐 둘러보았는데 면세점이 있어서 가격을 봤지만 그다지 저렴한 것 같지 않았다. 북유럽 자전거 여행 독실처럼
투르쿠에서 스톡홀름 사이에는 자잘자잘한 섬이 많이 있어서 망망대해를 볼 수 없다. 이 아기자기한 섬들은 스톡홀름 가는 내내 길목에 있다. 간혹 섬위에 건물이 세워져 있는 것도 볼 수 있다. 피곤함이 몰려와 방에 돌아와서 잤다.
반대 방향으로 지나가는 바이킹라인. 같은 선박회사이다.
저녁 7시 40분 도착시간이 다가와 자전거를 세워 둔 5층으로 갔다. 스톡홀름에 도착하기 전에 어느 비교적 큰 섬인 마리에함이라는 도시에서 잠깐 섰는데 그 섬에서 자동차와 자전거는 다 빠지고 다른 여행 자전거와 나의 자전거만 남아 있었다.
자전거의 주인은 스웨덴인 안드레씨였다. 안드레씨는 60대 이상으로 보였는데 몇 달 간의 긴 여행을 마치고 이제 집까지 100km만 남겨져 있는 상태라고 했다. 이번 여행을 시작한 후로 본격적으로 대화한 자전거 여행자는 안드레씨가 처음이었기 때문에 반가웠다. 자전거를 딱 보고 여행용임을 알만큼 짐이 꽤 있었다. 한국은 언제 자전거로 여행하기 좋냐고 물어봐서 가을이 좋다고 말해줬다. 페리에서 내려 육지로 가는 길은 차로 가득차서 꽤 복잡했다. 옆에 있는 큰 검은 절벽을 돌아 안드레씨를 따라가다가 교차로에서 서로 반대로 가야해 인사를 한 후 해어졌다. 나는 동쪽으로 가야한다.
스톡홀름의 처음 인상은 헬싱키보다 큰 도시라는 것이다. 차도 훨씬 많고 더 빠르게 달렸다. 자전거 길은 표기가 되어 있지만 잘 가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였고 4차선이 넘는 차도 한가운데 있어 처음 달릴 때는 놀랄 수 밖에 없다. 자전거 도로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자전거 도로가 부족해서 헬싱키가 더 잘 되어있다고 느꼈다.. 거기에 길가에 쓰레기가 전혀 없던 헬싱키와 다르게 쓰레기도 곳곳에 보였다. 밤 늦게까지 자전거를 타고 달렸던 헬싱키가 더 안전하게 느껴졌다.
스톡홀름에서
머문 곳은 호스텔 달라가탄 Hostel Dalagatan 이라는 곳으로 스톡홀름에서 가장 저렴한 숙소였다. 하룻밤에 145.75sek인데 대략 2만원 정도로 서울의 게스트하우스와 별 차이가 나지 않는다. 센트럴스테이션에서
1.5km 정도 떨어져 있어 걷기에는 애매한 거리이다. 자전거를
타고 어느 정도 가보니 거리가 한산해져 좀더 편하게 갈 수 있었다. 호스텔에는 1층에 있는 문 위에 간판이 작게 달려 있었다. 문은 가정집 대문처럼
작다. 이메일로 받은 코드를 누르고 들어가면 반지하에 위치한 로비가 나오고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방이
나온다. 내가 묵었던 방은 침대가 8개 있고 지하라 창문이
없는 방이다. 복도의 벽과 천장은 호비트의 굴처럼 굴곡이 져있다. 침대
시트도 무료로 제공되었는데 나쁘지 않았다.
스톡홀름의 숙소에서 짐을 풀고 있는데 특이한 전신 5부 수트를 입고 곱슬이에 키는 거의 190cm정도 사람이 들어왔다. 100리터는 되어 보이는 배낭 옆에 시마노 브랜드 스틱이 꽂혀 있어서 자전거 여행자인 줄 알았는데 트레킹하는 이탈리아 사람이다.
짐정리를 끝내고 같이 주방으로 올라왔다. 과일로 저녁을 때울 뻔 했는데 이탈리아인이 저녁식사를 만드는데 같이 먹지 않겠느냐고 해서 냉큼 좋다고 하였다. 버터를 가득 넣고 거기에 쌀과 어떤 노란색 액체가 나오는 어떤 콩을 넣은 다음 파프리카를 넣고 끌여 만든 간단한 음식이었는데 맛있게 먹었다. 계속 먹으니 나중에는 조금 짰다. 나는 핀란드에서 가지고 온 과일을 후식으로 줬다. 이 이탈리아인의 이름은 알베르토, 27세이다. 알베르토는 이탈리아의 페라리 공장을 11년간 다니다가 그만두고 지금은 대략 2년간 여행하는 중이다. 먼저 아일랜드를 자전거로 8개월간 여행하였다고 한다. 여행을 하다가 돈이 떨어지면 그곳에서 음식과 숙소를 위하여 일을 하면서 계속 여행을 했단다. 아일랜드에서 지내다가 4월에 노르웨이에서 출발해 북쪽으로 트레킹하여 핀란드 쪽으로 넘어갔다가 다시 스웨덴으로 들어와 스톡홀름으로 왔다고 한다. 북유럽 북쪽에는 사람들이 거의 안 사는데 자연인으로 계속 살아왔나 보다. 한번에 한두달 씩 산속에서 사는 것을 예상하고 한번에 며칠씩 야생에서 머무냐고 물어봤더니 최장 4~5일이라고 한다. 여행을 하면서 가장 좋았던 곳은 노르웨이 북쪽의 로프튼 제도라고 한다.
수공예로 돈을 벌거라며 뜨개질 기술을 연마하고 있는 알베르토
식사를 다 한 뒤에 대화에 다른 한사람이 꼈다. 식당 한 켠에 풍성한 수염이 나있는 있는 사람이 자리잡고 있던 사람이다. 처음에는 그냥 스웨덴인 인줄 알았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스웨덴에 온지 4년 정도 된 누르 Noor라는 시리아인 아저씨였다. 악센트가 좀 강하여 처음에는 알아듣기가 좀 어려웠다. 스톡홀름에 살지는 않고 북쪽에 쇠름빌이라는 돌로 지어진 마을에 산다고 한다. 쇠름빌이라고 들었는데 다시 찾아보니 순스발이라는 도시다. 나이는 36살에 원래는 의사였다고 한다. 지금은 의사 자격증을 다시 취득하려고 하고 대학교에 언어과정도 합격해 놓았다고 한다.
그는 스웨덴이 정말 살기 좋다고 말했다. 시리아의 사정에 대해서도 말해주었는데 다마스커스는 그나마 괜찮지만 언제 사정이 바뀔지 모른다고 하였다. 중동지역에는 성스러운 장소가 많아서 내부적이든 외부적이든 분쟁이 앞으로도 끊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시리아는 매우 종교적 이라고도 말하였다. 기독교인과 무슬림이 많고 유대인들도 조금 있다고 하였다. 시리아에서는 인종이나 언어로 지역이 나뉘는게 아니라 종교로 나뉜다고 한다. 한국에 대해서도 말을 많이 했다. 북유럽에 사는 시리아인에게 한국에 대해서 듣고 있다니. 한국의 드라마에 대해서 말하는데 대장금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내가 모르는 드라마에 대해서도 말을 많이 했다. 나보다 한국드라마를 더 잘 안다. 중동지역에서 한국 드라마가 인기있다는 것이 사실인가 보다. 그러고보니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도 단번에 맞췄다. 스톡홀름 첫날부터 시리아인을 만나다니 뜻밖의 경험이었다. 최근 1~2년간 난민문제로 시끄러웠는데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주었다.
알베르토는 이탈리아의 마피아는 해결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탈리아 국민들은 마피아와 교황, 그리고 정부가 전부 유착되어 있는 것을 안다고 했다.
그렇게 세명이서 대화를 하고 있는데 대만에서 온 도니 양 아저씨도 1.5리터 콜라 두 병을 가지고 합류하였다. DSLR에 70-200mm백통 렌즈를 장착하고 다녀서 전문 사진가인줄 알았는데 자기는 예쁜 여자만 찍는다고 하는 영어는 짧지만 농담을 잘하는 아저씨였다. 나를 보더니 ‘삼성! 삼성!’이라고 한다. 확실히 삼성이 유명하긴 하지. 영어는 짧지만 할말은 다하는 대단한 아저씨였다. 도니 양 아저씨는 6개월 일하고 6개월을 여행하는데 이번에는 동유럽을 거쳐 발틱 3국을 지나 스톡홀름으로 왔다고 한다. 거기에 같이 합류한 독일인까지.
그렇게 다섯명이서 밤 늦게까지 콜라를 마시며 다 함께 이야기를 하다가 잠을 자러 갔다.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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